우호태시인
우호태시인

 

‘미래’의 사전적 정의는 지금의 시간으로부터 그 이후를 말한다. 

“~ 미래로 ~” 홍보 현수막이 코로나19에도 아랑곳없이 주변 길가에 의젓하다. 

“~ 미래 ~” 뒤편에 큼지막한 홍보 문구가 회견장의 의미를 돋우나보다.

미래는 내일과 모레요, 비견한 과거는 어제와 그제일 테니 틈새인 현재는 오늘과 이 순간이려나. 물리적 배열이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에 닿으니 “순간에 머무름이 행복이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잠언도 생각난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솟는다”는 희망도 꿈틀대니 ‘미래’는 필경 희망을 돋우려는 표현이거나 의지일 테다.

미래의 포장을 슬쩍 들추니 그곳에 창의적 사고로 일궈낼 꿈들이 담겨 있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정치권에서 오랜 동안 주무른 탓일까? 생기를 잃어 박제된 채 나뒹굴 뿐이다.

그뿐이랴! 사방을 훑으니 새끼줄에 얽어맨 시래기처럼 주렁주렁하다. 국민, 민주, 우리, 사람… 시래기야 웰빙 음식 재료라지만 오뉴월에 푸릇푸릇 물오른 잎새라야 가을녘 황금빛 오곡을 기약하련만 버석거리는 거무티티한 낙엽 같다. 정치권의 마력이 언어영역마저 앗은 게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시골 동네에서 도토리를 줍던 일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날다람쥐처럼 나무에 기어서 올라 가지를 발로 구르더니 어깨에 힘이 들어선 청년기엔 돌팔매로 가지를 맞추고 장년에 들어선 아예 메로 나무줄기를 울려 우수수 떨어뜨렸다. 할머니들은 비바람 불면 이튿날 이른 아침 떨어진 도토리를 주우러 집을 나서니, 제때에 맞춘 기의 운용과 선험된 지혜일테다. 

방점은 도토리가 많이 달린 나무를 발견해 나무에 상처를 내지 않고 전신을 떨게 하는 울림에 놓일 테다. 장기, 바둑에 등장하는 신의 한 수요, 팔을 내주고 몸을 취하는 무림고수의 한 수에 비견될까 싶다.

내년에 열릴 씨름대회에 천하장사를 만들기 위한 정치권의 발길이 동서남북으로 분주하다. 박제된 ‘미래’가 활어가 되려나. 코로나 정국에 신의 한 수는 뭘까? 일시에 백신 공급, 무시험 대학입학 추첨, 아예 온 세상 들썩인 아파트 한 채씩 무상 제공이려나?

닫으면 답답하다. 경제총수와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이 울안에 있다. 열어야 세상이 돈다. 경제총수 사면을 위해 세간에서 힘을 모으나보다. 의례적 과정을 거치려나! 성현의 말씀에 “국민이 아무리 어리석어도 속일 수 없으며 국민이 아무리 약한들 이길 수 없다”는 그 사례는 동서고금에 무수하다.  

방탄소년단 신곡 발표, 손흥민 골 세례, 영화배우 윤여정 유려한 스피치… 그 소식들보다 국민들이 기대하는 것이 뭘까? 두 분 전직 대통령들과 경제총수의 울 밖으로 빠른 발길소식이 동화 속 ‘바람과 태양’ 이솝우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동네싸움도 품격을 가져야 널리 회자되니 천하장사의 씨름판도 달구어져야 제 맛이다. 

방정식, 벡터, 미적분 등을 넘어 고차원 수학의 우주방정식을 풀려나. 박제된 세상에 두 전직 대통령과 경제총수의 울 밖으로의 환한 소식을 기대한다. 지구촌에 솟는 한반도백신이요, 크리에이티브 프레임 ‘미래’를 위한 신의 한 수일까 싶다. 대통령! 풀고 여는 큰 통합의 울림말이다.

거리에 저 홀로 ‘미래로’가 뭇 백성 가슴에 쌩쌩한 활어가 되기를 설빔을 고대하는 아이의 맴이다. 세간 아우성에 보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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