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호태 시인
우호태 시인

 

뜬금없는 주제인가? 

집을 나서 산마루턱에 다다르니 앞서가던 중년고개를 넘은 듯한 분들이 주고받던 몇 마디소리가 나뭇가지에 연 걸리듯 마루턱을 돌아내려오도록 채인다.

“어이, 덩칫값 좀 해라.” “나이가 몇인데 왜 그래.”

덩칫값을 몸값에 비유해야 하나?

연예계에선 흔히 귀에 익은 말일테다. 출연료가 얼마나 될까? 두 자릴까, 세 자릴까? 물론 어미는 0이 하나에서 000에 이를 테다. 몸값 따라 주인공의 연기력은 비견할 테고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그에 이르렀음을 흔히 들어 알고 있는 일이다.

나는 어떨까? 몸과 마음을 고치느라 약값은 얼마나 들었으며 몸을 만드느라 이산저산을 찾아가며 보낸 시간이 꽤나 시간이 걸렸다. 덕택에 책을 접하게 되어 그나마 몸값에 보탬이 되려나. 

세칭 덩칫값에는 체력도 한 몫 하려니와 얼굴은 으뜸일 테다. 흔한 말로 간판얼굴이 있다니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나잇값은 또 얼마나 갈까?

벽장을 여니 아프리카ㆍ영국 속담에 “노인은 살아있는 도서관”이라며 한 노인의 사망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던가. 그 노인은 필경 나이가 지긋하거나 세칭 산전수전 다 겪은 터고 지식이나 세상에 전해질 지혜가 한 몸에 들었을 테다. 의미롭다 해야 하나. 최근 들어 세상이 어지러운지 학계의 철인들이나 여러 원로들께서 큰 말씀을 하거나 행동을 보이곤 한다.

디지털로 팽팽 돌아가는 세상은 어떤가?

흔히 ‘꼰대’라는 말에 묻혀가는 형국인지라 도대체 나잇값이 있기는 하나? 어린 시절 동네 형들이 담배피우다 ‘꼰대온다’며 몸을 숨기던 모습에서 분명 어른의 나잇값은 있었을 테다. 농사철 품삯도 열예닐곱이 되면 장정품을 인정했으니 말이다. 벼낟가리 뒤켠에서 듣던 “애들이 담배피면 뼈가 삭는다”며 ~하지 말라던 어른들 말씀은 이제는 ‘전설의 고향’에서나 나올까보다.

몸값에 나잇값을 더하면 이름값이려나?

오만스런 말일지?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를 “식민지 인도와도 바꾸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름값은 계량할 수는 있으려나. 체중계나 온도계에서도 아니면 방사성 탄소 측정방법으론 계량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인간이 간구함에 이르면 하는 말이 생각난다. “하늘이시여 굽어 살피소서”라든가 “하늘이여 들리시나이까” 하늘을 우러르며 두 손을 모으니 하늘에도 귀와 눈이 있다할 수 있으리니 방편삼아 세상말로 이름값을 매겨보자.

우선 위인들을 헤아려보면 어떨까? 석가, 공자, 예수 … 뉴턴, 아이슈타인 … 링컨, 슈바이처 … 광개토대왕, 세종대왕 … 이순신, 안중근…. 아, 그래 생각났다. 손흥민 몸값이 얼마더라? 백신 개발을 한 과학자들은 어떠려나? 거기에 이름값이 더해지니 꽤나 나갈듯한데…. 

우리네 범부는 얼마려나?

들쑥날쑥 하려나. 내 새끼하며 어르는 할머니를 보니 저자거리에 강아지보다 높을 테고 컴퓨터를 두드리는 왕자님이요 공주님이니 컴퓨터 값보다 나을 테요 꽃보다 아름다우니…. 

에이 엄마에게 물어보아야지. “엄마 내는 값이 얼마나 가?” “웬 뜬금없는 소리야.”

“있잖아, 글을 쓴 사람인데 그 사람은 인도와도 안 바꾼다거든.” “물건이야 바꾸게. 내 새끼를 뭘 바꿔. 그 사람이 밥 먹여 준다든.” 

뭘 던져야 하나?

짱돌, 벽돌, 신발을 던지며 세상에 들어서니 말이다. 해피 오월을 이리저리 닫으며 말없이 뜨락에 누워 허공에 이름을 부를 유월을 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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